Artist Focus · Sol LeWitt

솔 르윗은
다른 사람
그릴까?

아이디어가 악보라면 벽에 나타난 선은 연주다. 월 드로잉 네 점으로 읽는 솔 르윗의 작품 세계.

아이디어, 지시문, 실행자, 벽으로 이어지는 솔 르윗 월 드로잉 제작 방식을 선과 색면으로 표현한 편집 도해
먼저 답하면

솔 르윗에게 작품의 핵심은 손으로 그린 흔적보다 먼저 세운 아이디어와 규칙이었다. 그래서 훈련받은 실행자가 지시문을 해석해 벽에 그려도 같은 작품이 된다. 다만 실행할 때마다 공간과 손이 달라져 결과는 조금씩 변한다.

손보다 먼저 온 것은 ‘생각’이었다

솔 르윗(Sol LeWitt, 1928–2007)은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서 태어나 시러큐스대학교에서 회화와 판화를 공부했다. 한국전쟁 복무 뒤 뉴욕으로 옮겼고,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일하며 댄 플래빈, 로버트 라이먼, 로버트 맨골드 같은 동료들을 만났다. 이 시기 그는 감정적인 붓질 대신 선, 격자, 정육면체, 반복처럼 미리 정할 수 있는 요소에 관심을 두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작가 소개미국 국무부 미술 컬렉션이 이 경로를 확인해 준다.

1967년 발표한 「개념미술에 관한 단락들」에서 그는 작품을 만드는 장치로서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완성된 물건보다 그것을 낳는 규칙에 무게를 둔 것이다. 1968년 시작한 월 드로잉은 이 생각이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형식이 됐다.

그림을 ‘하나의 물건’에서 다시 실행할 수 있는 ‘하나의 생각’으로 바꾼 작가.

월 드로잉은 악보처럼 작동한다

르윗은 먼저 선의 방향, 색, 반복 횟수, 벽에서의 위치 같은 조건을 정했다. 그다음 실행자가 그 지시를 읽고 실제 공간에 옮긴다. 뉴욕현대미술관은 이 관계를 작곡가와 연주자에 빗대어 설명한다. 작곡가는 음을 적지만 음악은 연주자의 몸과 장소를 통과해야 들린다.

아이디어에서 지시문, 실행자의 판단, 건축 공간, 완성된 월 드로잉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설명한 도해
슈갤러리 편집 도해. 실제 솔 르윗 작품의 복제가 아니라 제작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그림이다.

그렇다고 실행자가 단순한 복사기는 아니다. 벽의 크기와 모서리, 문과 기둥이 달라지고 선을 긋는 사람의 판단도 개입한다. 같은 지시문이 다른 장소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유다. MoMA의 〈Wall Drawing #1187〉 해설은 르윗이 이 과정을 수행적인 것으로 보았으며, 작곡가와 연주자 모두 각자의 표현을 남길 여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럼 ‘진짜 작품’은 무엇인가?

벽에 남은 그림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아이디어와 지시문, 정당한 설치를 증명하는 문서, 그리고 그 지시에 따라 실행된 벽의 상태가 함께 작품을 이룬다. 전시가 끝나 벽을 덮어도 작품의 개념은 사라지지 않고 다음 장소에서 다시 실현될 수 있다.

대표작 네 점으로 보면 규칙이 보인다

1970

Wall Drawing 51

건축의 모든 점을 직선으로 연결한다. 문틀과 모서리, 기둥처럼 이미 있던 공간이 그림의 출발점이 된다. 건물이 바뀌면 선의 그물도 달라진다.

1975

Wall Drawing #260

선과 호의 조합을 체계적으로 펼친 작품이다. 즉흥적으로 채운 화면이 아니라 정해진 요소가 가능한 관계를 순서대로 시험한다.

1975

Wall Drawing 274

여섯 기하학 도형의 위치를 찾되 구체적인 배치는 실행자가 정한다. 지시문은 경계를 만들고 그 안에 판단할 자리를 남긴다.

2005

Wall Drawing #1187

연필 낙서를 층층이 쌓아 여섯 단계의 회색 띠를 만든다. 반복된 손의 시간과 물결치는 농도가 전면에 나타난다.

네 작품은 서로 다른 답을 준다. 51번에서는 건축이 규칙을 바꾸고, 274번에서는 실행자의 선택이 결과를 바꾼다. 260번은 조합의 질서를, 1187번은 반복하는 손의 시간을 드러낸다. ‘개념이 중요하다’는 말이 결과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조건이 모습을 바꾸는지 더 또렷하게 보게 한다.

전시장에서는 이렇게 보면 된다

먼저 지시문을 읽는다

선의 방향, 색, 수량, 위치 중 무엇이 고정됐고 무엇이 열려 있는지 찾는다.

벽의 조건을 찾는다

모서리, 출입구, 기둥 때문에 선과 색면이 어디서 꺾이고 잘리는지 본다.

반복 속 차이를 본다

기계 선처럼 보여도 가까이 가면 재료와 손의 흔적, 농도의 차이가 드러난다.

다른 설치와 비교한다

같은 번호의 작품이 다른 공간에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공식 기록을 찾아본다.

“무엇을 그렸나”만 물으면 단순한 선과 도형에서 멈춘다. “어떤 규칙이 이 모습을 만들었나”라고 질문을 바꾸면 작품은 완성된 그림에서 생각이 움직이는 과정으로 열린다.

See it in Seoul

지금 서울에서
직접 보는 법

아모레퍼시픽미술관 《Sol LeWitt: Open Structure》는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이다. 1960년대 구조물부터 후기 색채 작업까지 45점을 소개하며, 그중 월 드로잉 13점은 미술관 공간에 맞춰 새로 실행됐다.

  • 기간: 2026.09.01–2027.02.28
  • 장소: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서울 용산
  • 관람: 온라인 사전 예약 필요

공식 전시 안내 · 관람 시간·요금

독자가 자주 묻는 질문

솔 르윗은 개념미술가인가, 미니멀리즘 작가인가?

두 흐름 모두에서 중요한 작가다. 단순한 기하 형태와 반복은 미니멀리즘과 맞닿고, 작품의 물질보다 아이디어와 실행 규칙을 앞세운 글과 월 드로잉은 개념미술의 토대가 됐다.

솔 르윗이 직접 그리지 않으면 복제품 아닌가?

작가가 정한 지시와 정당한 절차에 따라 실행된 설치는 복제품이 아니라 그 작품의 한 번의 실현이다. 악보가 여러 공연으로 연주되어도 같은 곡인 것과 비슷하다.

월 드로잉은 전시가 끝나면 어떻게 되나?

대개 벽에서 지워지거나 덮인다. 그러나 지시문과 작품의 권리 및 설치 기록이 남기 때문에 다른 장소에서 다시 실행할 수 있다.

솔 르윗 작품을 볼 때 가장 먼저 무엇을 봐야 하나?

작품 번호와 지시문을 먼저 확인한다. 그다음 벽의 구조와 실행자의 손이 규칙을 어떻게 눈앞의 선과 색으로 바꾸었는지 살펴보면 된다.

확인한 공식 자료

  1.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작가 소개
  2. MoMA 솔 르윗 기록 · Wall Drawing #1187
  3. MoMA, Focus: Sol LeWitt
  4. MASS MoCA 회고전 · Wall Drawing 51 · Wall Drawing 274

자료 확인일 2026.09.17. 작품 이미지는 전재하지 않았으며 도해는 작품을 재현하지 않은 슈갤러리 편집 이미지다.